본문 바로가기

25살 디지털 노마드, 태국 가다

성공해서 최고가 돼야 하는 유일한 이유

반응형

    학교를 다니지 않고 홈스쿨을 한 나와 여동생이 아침에 일어나면 의식적으로 부모님과 책 읽고 느낀 점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고전, 성경, 논어 등 모든 종류의 옛날 부류의 책이 사용됐다.

 

  엄마였는지 아빠였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갑자기 우리 수준에 읽기 어려운 하드커버 책 한 권을 가져오시더니 거기다 꿀을 발라 핥게 했다. 책은 성공을 위한 지름길이자 마음을 단련시키기 위한 보물이라서 이렇게 달콤한 거라고 했다. 유대인의 자녀교육 책을 읽으시고 자녀들에게 직접 적용해본 부모님의 교육 열정에서 나온 신선한 시도였다.

 

  유대인과 관련한 책이 많은 이유는 그들이 가진 돈에 대한 철학과 실제로 돈을 굴리는 기술이 다른 민족보과 남달라서일 가다. 이스라엘의 사해는 세계에서 가장 짜기 때문에 죽음의 바다라고 불리는데 이는 물이 흐르지 않고 고이기 때문이다. 물이 들어오면 바깥으로 나가야 그 호수가 깨끗해지고 마시기 안전한 것처럼 유대인들도 돈은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혈액이 되도록 흘려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부를 많이 한다.

 

  부모님 또한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는 남에게 주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같은 마인드셋으로 가르쳐주신 걸 거다. 사회에서 직장인으로 생활하며 남들에게 쉽게 베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사뭇 깨닫는다.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관계를 골라내듯 돈을 쓰는 대상과 상황과 규모 모두 매 순간 고려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마땅히 베풀어야 할 누군가에게 돈을 쓰면서도 '아깝다'라고 생각이 드는 건 재정이 넉넉지 않은 내 상황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각박한데 베푸는 것에 예민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스스로 합리화를 하곤 했는데 괜히 내가 정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퇴사하기 전 많은 직장동료분들이 개인적으로 밥 한 끼 하자고 해서 거의 매일 종로 근처서 외식을 했다. 작별 인사 겸 식사라고 하는 자리에 그동안 더 같이 일해보지 못함에 아쉬워하며 서로 SNS 계정도 공유했다. 한 달이란 인수인계 기간 동안 막 새로 입사하신 분들도 식사 한 끼 하자 하셔서 밥을 먹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마케터 동료분이 계시다.

 

  내가 아프리카 지역학을 전공했다고 하니 자기도 아프리카 선교와 비즈니스 활동 다녀오셨다면서 지대한 관관심을 보이시던 마케터 분과 홍콩 국수를 먹으며 한 시간 동안 대화했다. 7살짜리 딸과 아내가 있으신 그분은 나를 보자마자 자기와 가치관이 잘 맞겠다는 삘(Feel, 필, 느낌, 감정, 뭐 그런 뜻)이 왔다셨다. 

 

  곧 퇴사하는 퇴사자가 끝까지 맡은 일을 다 해내려는 걸 슬랙 업무용 메신저로 보면서 참 책임감이 강하다고 생각하셨단다. 이은빈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만 자기가 봤을 땐 이런 얘기를 해줘도 괜찮겠다 싶어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이고, 짧은 시간에 내게 해줄 말이 많은데 시간이 없으니 몇 가지만 얘기해주겠다면서 사적인 그분 인생 스토리를 조금 들려주셨다.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던 그분의 스토리는 내 머리를 좀 세게 강타했다. 첫째로 그분의 우선순위가 뒤바뀌던 계기에 관해서다. 자기가 인생에서 꼭 가져야 하는 우선순위 (돈, 명예, 가족, 될 수 있는 모든 것)를 현실화하려고 아등바등했는데, 정작 객관적으로 분석하니 자기에게 중요한 우선순위가 따로 있었다는 거다. 

 

  자기는 우선순위를 '세우기만' 했지 어떤 우선순위가 자기에게 '옳은지'를 분석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걸 깨닫고 재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즉 '나에게 맞는 길'과 '내가 원하는 길'이 중첩되지 않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것. 둘 중에 하나를 결정해야 하는 시간이 온다면 '나에게 맞는 길'을 선택할 것.

 

  둘째로 성공에 관한 그분의 가치관이었다. 돈과 명예와 권력이 다가 아니라고 하지만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지 않고 우리는 원하는 걸 취할 수가 없다. 더 문제가 되는 건 마음에 여유가 사라진다. 마음에 여유가 사라지면 나를 돌보지 못한다. 나를 돌보지 못하면 남 또한 돌보지 못한다. 남을 돌보지 못하면 이웃을 사랑할 수도 없다. 이웃을 사랑할 수 없는 건 종교적으로 계명을 어기는 죄다. (성경의 십계명 - 네 몸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

 

  어쩌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성공의 척도가 된다는 세상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이웃을 사랑하려면 내 마음속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세상에서의 여유를 찾으려면 돈과 명예를 가져야 한다. 돈과 명예를 가지려면 내가 어떤 것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경지까지 가서 존경을 설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서야 한다. 즉 남과 나를 사랑하기 위한 마음속 여유를 가지기 위해 성공해야 한다.

 

  그렇게 그분이 마지막 조언을 주셨다. "은빈, 최고가 되세요."

 

 


 

  편도권을 끊고 태국으로 오는 첫날 나의 일정은 다른 여행객들처럼 숙소를 잡고, 숙소로 가는 택시를 미리 예약해 이용하는 것이었다. 마침 한국외대로 편입하기 전 2년 동안 다닌 부산외대에서 친하게 지냈던 태국어과 선배가 생각이 났다. 방콕의 한국지사에서 일하고 있는 걸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태국에 아는 유일한 사람인데 오랜만에 얼굴만 잠깐 보면 좋겠다 생각하여 입국 바로 전날 연락했다. 기대도 안 했는데 선배가 선배 여자 친구와 당일 가는 축제가 자정에 끝나고, 내 비행기가 자정 조금 넘은 시간에 공항에 도착하니, 데리러 오겠다는 것이다.

 

  황급히 택시를 취소했다. 24시간 전에 취소하면 전액 환불인데 마침 24시간이 되기 10분이 남아있던 때였다. 인사만 잠깐 할 줄 알았더니 방콕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코리아 타운으로 데려가 새벽 4시까지 여는 고깃집에서 소고기 4인분을 시켜주셨다. 수수료 없이 환전도 해주시고, 선배 여자 친구는 심지어 다음 날 날 데리고 카오산 로드 관광명소로 데려가는 등 두 분께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다.

 

  생각지도 못하게 넘치는 대접을 받았다. 이렇게까지 내게 베풀어줘도 될 만큼 내가 가치가 있나부터 생각하게 되는 나 자신을 보며, 언제부턴가 내가 모든 것을 평가하고 재고 있다는 걸 다시 깨닫게 했다. 진심으로 고마웠고 더 크게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돈으로만 갚지 않아도 되는 것이 분명하지만 더 좋은 음식과 선물과 경험으로 보답하려면, 지금보다 더 성장해봐야겠다, 하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우연이라는 게 뭔지. 운명이라는 게 뭔지. 가끔 예기치 못한 순간 소소하게 다가오는 신선한 경험들은 어릴 때 경험과 맞붙어 생각의 퍼즐을 맞추게 한다. 

 

  동기부여와 자기 계발이라는 해시태그가 인스타그램에서 요즘 핫하다. 나 또한 해당 관련 글을 올리면 '좋아요' 수가 평소보다 두 배는 넘어간다. 유명한 유튜버의 돈과 성공 관련 정보를 나누는 카톡방 한 다섯 군데는 들어가 있다.

 

  다들 자신을 성장시키는데 열정적인 훌륭한 인재들과 대화하다 보면 자극도 받고 참 좋은데 부자가 되는 등 성공해야겠다는 꿈을 꾸게 된 계기를 나누는 데는 다들 굉장히 조심스럽다. 그만큼 민감한 주제이니 너무나 당연할 거다. 

 

  어쨌든 단순히 성공해야겠다는 '목표'에만 집중하던 나에게 '남과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여유를 갖자'는 꿈을 다시 기억하게끔 하는 최근 몇 가지의 경험들이, 뭐랄까. 그냥 좋았다.

 


 

IT 외국계 기업의 PM으로 일하다가, 고된 커리어의 길에서 잠시 쉬고 있는 스물다섯입니다. 세계를 여행하는 디지털 노마드 인생으로 잠시 살렵니다

 

인스타그램: @babylion.eun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