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의 고민 끝에 인생의 전환점을 '개척'해보고자.
지난 1년 6개월, 짧았지만 내 개인적인 커리어에 엄청난 성장에 도움을 준 사랑하고 정든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인내를 하였고, 모든 몸부림을 쳤고, 잡아낼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잡아 여기까지 성장했다고 자부한다. 그런 환경을 가능하게 해 준 회사와 동료들과 나 자신에게 감사하지만, 여기까지가 우리 인연인 듯하다.
'프로젝트 매니저'라는 직무를 우연히 얻게 되고 그 직무에 맞춰 실력을 키우려고 노력을 쏟아부었다. 하루 8시간 근무 후 집에 와 새벽까지, 주말은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거나 자격증 공부를 하며 어떻게든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PM은 여기저기서 요구되는 역량이 정말 많다. 동시에 우선순위에 따라 누군가의 요구를 거절해야 하기도 하고, 여기서 감정적인 소모도 정말 크다. 마케터는 기능을 끊임없이 제안하고, 개발자는 명확한 업무 문서화를 위해 자기가 만든 제품을 좀 더 이해하기를 바라고, 디자이너는 자신의 예술성을 제품에 반영하길 바라고, 당신의 직속 상사는 프로젝트 절차를 개선하길 원한다.
조금씩 시간을 내어 내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에 집중하면서 이 모든 걸 다 쳐내고 있다면, 당신은 정말 훌륭하고 유능한 PM이다. 아쉽게도 난 전자를 성공시키지 못했다. 업무량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성장'보다는 '생존'에 가까운 매일을 보내는데 가까웠다.
매일 회사 공개 채널에 공유하는 To do list에 적어도 하루 8개 정도의 끝내야 할 목록을 써 내려갔다. 퇴근 시간이 다가올 때쯤이면 내 리스트의 각 목록은 하나씩 줄이 그어져 있었다. '아, 오늘도 팀원들을 충분히 도와줬다, 프로젝트 진전이 좀 있었다.'라는 보람이 있다면, '내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언제 하지', '부족한 역량을 공부할 시간은 어제 갖지' 하는 회의감도 동시에 들었다.
팀원은 20명이 넘는데 일을 만들고 할당해야 할 사람은 나 혼자다 보니, 아무리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도 나의 시간을 확보할 수 없었다.
회사 상황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보니 직원 한 개인을 돌볼 시간이 없었을 거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상황에 따라 한 쪽이 더 많이 희생해야 하는 불안정한 상황이 연출되고야 말았고, 이해하지만, 숨이 잘 안 쉬어지는 지경까지 와버린 나 자신을 보며 아무래도 어떻게든 조치가 취해져야 했다. 내가 원한 건 이런 방식의 도전이 아니었다.
또 다른 이유로는, 내 가치가 회사 안보다 바깥에서 더 인정받는 느낌이 강했다. 여러 기업의 출강 요청을 받고, 전국 주니어 PM들과 교류하며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자리도 갖고, 내가 그렇게 치열히 공부했던 '프로젝트 매니징'을 실무와 접목시켜 어떻게 하고 있는지 교육했었다. 회사 안에서도 나 혼자 PM인 기간 동안 매주 안전하게 많은 기능이 배포되고 비즈니스 본부와 개발 본부 사이 소통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분명 내 스킬도 분명 훌륭했다. 그런데 보람차지가 않았다. 고맙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PM 포지션의 업무 공로가 인정받기 힘든 환경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마지막으로 회사가 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확답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지금처럼 일을 처리해주길 바랬다. 그건 개인적으로 불가능했다. 이 환경에서 더 이상의 '성장'이 있을 것이란 확신이 없었다. 내가 분명히 뭔가를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 없었다. 일이 줄어들거나 더 많은 보상이 있거나, 둘 중 하나가 해결책이었지만 어쩌면 내 실력이 모자라서, 혹은 회사에서 그리 중요한 포지션이 아니기에, 혹은 회사가 돌아가는 사정이 엄청 바빠서. 그래서 해결책이 딱히 나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다.
내 레벨의 역량보다 더 높은 수준의 PM 역량을 원하는 환경일 수도 있고, 아니면 PM 포지션 자체가 필요하지 않은 환경일 수도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어떤 케이스이든 나는 '프로젝트 매니저'라는 직무를 계속 가져갈 거고 기획을 본격적으로 배워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타이틀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기획을 따로 배울 수도 없고, 가르쳐줄 사수도 없고, 배울 시간도 없어서 좀 더 내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기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하고 싶다.
공부가 하고 싶다. 부족한 것을 메꾸고 많이 알아야 앞으로 일할 팀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디자인, 개발적으로 쌓아야 할 역량은 차고 넘쳐난다. Coursera나 EdX 등 관련 온라인 강의가 정말 많아 이미 수강하고픈 강의를 다 골라놨다.
배움을 위해 안정적이고 높은 급여의 회사를 잠시 포기하기로 한다.
디지털 노마드를 하고 싶었고, 충분한 재정이 생겼다
회사를 다니면서 '크몽', 'Class 101' 등 재능기부나 온라인 강의, 전자책 등으로 수익을 버는 것에 집중한다면 월급보다 더 많이 벌 수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몇 개월 간은 여러 분야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며 과연 평균 직장인들보다 급여가 많은 회사에서 받는 양보다 더 많이 벌 수 있을지 궁금했다.
영상 편집, 통역, 번역, 카드 뉴스, 카피라이팅 등 내가 가진 능력은 참 다양한데 썩히기 아깝기도 했고.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갈 충분한 역량이 되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원하는 시간에 일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원래 몇 년 후 하기로 마음먹었던 이 삶을 단기간만 투자해보고자 한다.
잠시 나를 해방하러 태국으로 간다.
성격도 ESTJ인 내 인생은 항상 계획이 있었지만 이번 스물다섯 인생 하반기는 조금 무계획으로 살아볼까 싶다. 분명 성취하고픈 목록은 있지만 너무 딱딱하게 틀을 잡지 않고 관대하게(?) 이 기간을 꾸려볼 생각이다.
디지털 노마드를 하기 가장 좋은 국가를 선정해보니 평소 기억에 남았던 방콕 도시와 인도네시아 발리가 생각났다. 충분한 재정도 지난 1년 6개월 동안 모아 졌겠다, 물가도 싼데 다양한 경험이 가능한 곳들이라 들었다.
여자 혼자 배낭 들고 무계획으로 몇 개월 살게 오겠다는 딸의 무모한 계획을 부모님은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아무래도 그동안 내가 너무 힘들어 보였나 보다. 푹 쉬고 오라 하셨고, 좀 더 참고 회사 다녀보라는 언급도 절대 하지 않으셨다.
따라서 이번 매거진 [디지털 노마드로 태국에서 살아남기]에서는 디지털 노마드 인생을 살며 동시에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더 많은 공부로 나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 일상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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