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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 디지털 노마드, 태국 가다

내 결정은 옳았을까, 감정적 충동과 이성적 판단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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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평소에 놓쳤던 소소한 행복들이 눈에 보인다.

 

  내가 사는 월세방은 3층인데, 베란다 커튼을 젖히면 바로 앞에 정원을 잘 가꿔놓은 원불교 절이 보인다. 그 사이에 쌓아진 담장과 담장을 훌쩍 뛰어넘는 거대한 나무가 한 그루 있다. 12월에 본 그 나무는 앙상하게 가지만 남아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매일 빨래하러 베란다에 나갔었는데 나무에 무성히 달린 녹색 나뭇잎들을 어제 처음으로 보았다. 지난 6개월 동안 모르다가 왜 이제야 봤나 싶었다. 흠칫 놀랐다가 신기하고 예쁘고 해서 창문 열고 사진 찍는데 몇 분을 보냈다. 바깥에 참새 소리도 오랜만에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는데 맑은 새벽 공기 향기가 나서 고개를 들었다. 숲 속에서나 맡을 수 있었던 흙냄새가 내 방에서도 가능한지 몰랐다. 신촌과 홍대는 시끌벅적한 동네지만 내가 사는 곳은 그 사이 좀 조용한 곳이긴 하다. 그래도 이렇게 맑은 공기를 맡을 수 있는 건 사실 기적이다. 그동안 왜 몰랐을까 싶었다.

 

  홍대입구역 8번 출구 앞에 자주 가는 포장마차가 있다. 아주머니가 튀김 2개를 1500원에 파시는데 떡볶이 국물도 묻혀주신다. 간단한 저녁이 필요할 때마다 열 번은 넘게 갔을 거다. 그동안 시간이 없으니 후다닥 먹고 나왔는데 어제 아주머니와 처음으로 통성명을 했다. 27년 동안 그 자리에서 떡볶이를 파셨고 그 돈으로 집 네 채를 사셨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러면서 '하나만 꾸준히 해도 성공하는 세상인데 두려울 거 하나도 없다'라고 하시더라.

 

  돌보지 못했던 몸을 돌보기 시작했다. 헬스장에서 매일 두 시간 동안 온몸을 조진다. 근육 운동을 열심히 하다 보니 오랜만에 느끼는 근육통에 찢어지는 희열감이 들었다. 내 소중한 몸에 신경 써서 비싼 야채도 사서 먹어주고 집 앞의 연남동 책거리에서 밤 산책도 자주 한다. 다시 영혼이 살아나는 뭐, 그런 느낌이다.

 

  평소에 하던 부업이 있었다. 좀 더 집중해서 시간을 투자하고 싶었는데 이제 시간이 생기니 영상편집, 카피라이팅, 번역을 좀 더 할 수 있게 되었다. 열고 싶었던 온라인 강의도 드디어 열었고, 작은 온라인 쇼핑몰도 열었다. 글 쓰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일기 쓸 시간이 더 확보되어 행복하다.

 

  퇴사를 통보할 때도 불안했던 나는 결정을 내린 몇 주 후 내 결정이 옳았다는 걸 알았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은 감정적일 때와 이성적일 때를 잘 구분하는 인생이다. 

 

  이성은 객관적인 시선에서 효율적인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지만,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감정의 중요성을 망각하기가 쉽다. 내가 그랬다. 감정적 충동이 훌륭한 삶의 적인 줄 알았다. 일의 효율성만 중시한 나머지 내 인생에서 효율적이지 않다면 굳이 느끼지 않아도 될 남들에 대한 연민, 동정심, 나 자신을 위해 가진 걸 포기할 줄 아는 조금의 타협 등은 무조건적으로 배제하려고 했다. 마음속으로 점점 차가운 냉혈한이 되어가는 느낌이었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이들과의 교류에서 어떤 이득이 있을지 계속 평가하는 게 습관이 되어갔다.

 

  감정의 중요성을 오히려 직장이라는 일터에서 배웠다. 팀워크에서 특히 중요하게 작용하는 감정은 협력과 소통의 90% 태도를 차지한다는 글을 읽었다. 공감한다. 내 감정을 잘 다스리면서 남들의 감정도 잘 읽어낼 줄 아는 사람이 대화를 잘하고 팀과 회의도 잘 이끈다는 걸 뒤늦게 안 것 같다.

 

  이익 집단에서 누군가를 배려하고 그 사람의 감정까지 고려한다는 게 참 모순적으로 보이긴 하다. 나도 무언가를 받겠지 예상하고 배려하다가 돌아오는 게 등 뒤에 꽂히는 칼일 가능성도 물론 높다. 그래도 요즘 회사의 '리더십'이란 주제에서 '감정, 소통, 교류, 협력' 등의 키워드를 중요시하는 것은 이런 태도 없이 집단이 잘 안 돌아가기 때문일 거다.

 

  감정의 중요성이 회사에서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인생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결정적인 순간에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내도록 자극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내 결정을 탐탁지 않아할 때. 확률적으로 남들의 시선에서 분명 건강한 결정이 아닐 때. 그 결정이 오히려 내 눈에서만 옳은 결정으로 보일 때. 가장 헷갈리는 순간에 감정은 내 내면의 목소리가 되어 "내가 너를 가장 잘 알아, 일단 해봐"라고 외쳐준다.

 


 

  최근에 강릉 집으로 가서 퇴사 생각에 대한 고민을 부모님께 털어놓았었다. 내가 너무 힘들어 보였는지, 아니면 내가 잘 해낼 거라고 전적으로 믿어서인지 부모님은 딱히 반대하지 않으셨다. 내일 공제라는 큰 기회비용과 내 불투명한 2022년 하반기 계획에도 불구하고 그냥 쉬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내셨다.

 

  아버지는 조금 아쉬움을 드러내긴 하셨어도 아무 말 없었고 어머니가 했던 말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확신이 없을 땐 그냥 하는 거야. 세상이 네 편이 아닐 땐 너라도 네 편이어야 하고 네가 옳다고 믿으면 옳은 결정이 되는 거야."

 

  그 말이 내게 정말 큰 위로가 되어서일까. 일단 스스로를 믿기로 결정한 순간 처음으로 내 내면의 목소리, 감정의 편을 들어주기로 했다. 세상에는 수만 가지의 길이 있고 수만 가지의 목소리와 조언이 있지만 결국 가장 날 잘 아는 내가 내 길을 선택하는 것이 맞다. 내 선택은 옳고 그름의 형체가 불분명하다. 이걸 옳게 만드는 것도 내 책임이 될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나 스스로를 위해 잘 해내야 한다.

 

  이성적인 이유는 그 이후에 붙어도 상관없었다. 아니, 남들에게 설명할 이유조차 어쩌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맞다고 확신하는 길에, 왜 이 결정이 옳았는가를 남들이 이해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당당하다. 어쩌면 이번 계기로 남들이 보는 나에 대한 시선과 생각에 덜 집착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IT 외국계 기업의 PM으로 일하다가, 고된 커리어의 길에서 잠시 쉬고 있는 스물다섯입니다. 세계를 여행하는 디지털 노마드 인생으로 잠시 살렵니다

 

인스타그램: @babylion.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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